- 리즈 데이비즈 부부
- 토마스(1843~1922)-카롤린(1857~1942)
- 2004.08.10 16:00 입력 발행호수 : 659 호 / 발행일 : 2002-06-12
불교 위해 평생 헌신 수많은 번역-저술 남겨
팔리성전협회 창립 주도 서구 지식인에 큰 영향
토마스 윌리엄 리즈 데이비즈(Thomas William Rhys Davids)는 어느 날 한 비구 스님의 죽음이 발단이 되어 야기된 분쟁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가만히 사태를 파악해보니 그 후임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의 제자와 다른 스님이 그 자리를 다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리즈 데이비즈가 이를 종합해 내린 결론은 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은 바로 ‘비나야(Vinaya)’라 부르는 법체(法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오직 팔리어<빠알리어>로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리즈 데이비즈는 우난세 야트라물레(Unnanse Yatramulle) 스님으로부터 팔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종려 나뭇잎에 쓰여진 불교 경전을 수집하는데 몰두했다.
그가 스리랑카에서 판사로 재직하던 20대 후반의 이 사건은 그가 불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도록 하는 동시에 한평생을 불교신자로서 살아가도록 했던 매우 중요한 요소다.
스님들의 분쟁해결 요청
토마스 윌리엄 리즈 데이비즈는 1843년 5월 12일 영국 에섹스(Essex)의 조그마한 시골동네인 콜체스터(Colchester)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브라이턴 스쿨(Brighton School)을 거쳐, 브레슬라우대학(Breslau University)에서 그리스어와 산스크리트를 전공했다. 당시 그리스어는 유럽에서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유럽언어의 뿌리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산스크리트는 인도와 불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언어로 부각돼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 시기는 바로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영국인들이 인도로 향하고 있었던 때였다. 리즈 데이비즈도 대학 졸업 후, 인도 동남쪽에 위치한 스리랑카로 가서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다. 1866년에서 1872년까지 지방 순회 판사, 고고학위원회 위원 등 식민 지배에서의 법 집행을 하는 동시에 문화재 발굴과 약탈을 자행하는 자들을 옹호·방관하며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앞의 일화에서 나타나듯 이 사건을 계기로 열렬한 불교신자가 되어 불교 연구에 천착하게 된다. 그 후 1877년에는 억울한 소송 당사자들을 위해서 잠시 법정 변호사로도 활약한다.
스리랑카에서의 이런 활동이 계기가 돼 1882년 런던의 유니버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팔리어 및 불교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912년까지 계속 교수직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1904년에서 1915년까지 맨체스터대학 비교종교학 교수로도 활동하면서 영국에서의 불교연구 지평을 더욱 넓히게 된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변화는 1894년, 그의 나이 51세 때, 당시 37살의 카롤린 어거스타 폴라이와 뒤늦게 결혼했다. 평생 독신의 성실한 생활을 하며 마치 부처님의 수행시절 고행을 연상하듯이 실로 꿋꿋이 불교신자 및 불교학자로서 살아온 토마스 리즈 데이비즈의 일생에 있어서 두 번째의 큰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카롤린은 경제학회지 편집진의 한 사람으로 여성 및 아동 복지와 관련된 많은 단체에서 활동했는데, 토마스와의 만남을 통해 불교의 대자대비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평생 팔리성전협회 운영과 불교연구에 헌신했다.
토마스 윌리엄 리즈 데이비즈는 당시 영국 최고의 불교 전문가로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간추려 보면, 1881년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창립해 1922년까지 회장으로 기초를 다지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뿐만 아니라 1900년에는 ‘인도경전 시리즈(Indian Text Series)’를 잇따라 출간했으며, 1901년에는 ‘브리티시 아카데미(British Academy)’를 창립했다.
평생 동지 카롤린과의 만남
또 1885년에서 1904년까지는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의 사무총장 및 도서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70이 넘어 은퇴할 무렵부터는 ‘맨체스터 가디안’이라는 신문에 불교와 인도에 관한 칼럼을 자주 기고했으며, 죽는 순간까지 팔리-영어사전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도반이며 부인인 카롤린의 정성스런 보살핌 속에 1922년 12월 27일, 서레이(Surrey)의 칩스테드(Chipstead)에서 서양불교사의 한 분기점이 됐던 자신의 79년의 생애를 조용히 마감했다. 이후 그의 성실한 불교연구와 모범적인 생활, 그리고 불교인으로서의 업적과 삶은 수많은 유럽인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그의 유업은 부인 카롤린에 계승되어 더욱 발전해 나갔다.
리즈 데이비즈와 비슷한 무렵 스리랑카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로버트 차일더즈(Robert Caesar Childers, 1838~1876)는 팔리어를 약 8년간 배워서 런던으로 돌아와 1872년에서 1875년에 걸쳐 624쪽에 달하는 「팔리어사전(A dictionary of the Pali language)」을 발간하게 된다. 이 사전은 리즈 데이비즈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됐으며, 좀 더 체계적인 연구 조직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하여 1881년 리즈 데이비즈는 ‘초기 영어 원전학회(the Early English Text Society)’의 사례를 본받아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창립하게 된다.
그의 동반자로서 불교를 연구 카롤린 어거스타 폴라이 리즈 데이비즈(Caroline Augusta Foley Rhys Davids)는 1857년 9월 27일 태어났다. 그녀는 대학교 입학 때까지 초·중·고교 과정을 가정에서 학습하고 런던의 유니버서티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그녀는 경제학회지 편집인으로 1891년에서 1895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1894년에는 토마스와 결혼한 후 1896년부터 1914년까지는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주도적인 캠페인을 벌였으며, 1910년부터 1913년까지는 맨체스터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가르치는 강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18년에서 1933년까지는 런던대학의 동방·아프리카대학(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불교사를 강의했으며, 남편 토마스 리즈 데이비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팔리성전협회 회장으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봉사했다. 1942년 6월 26일 여름날 오후, 풍광이 좋은 서레이의 칩스테드의 거처에서 그녀는 향년 85세의 일기로 그토록 기원했던 불국토로 떠났다.
유럽대학에서 불교지도
토마스 윌리엄 리즈 데이비즈는 수많은 불교 관계 저서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1878년 출판된 「불교」, 1896년 「불교의 역사와 문헌」, 1903년 「불교국 인도」를 비롯해 팔리 경전 중 자신이 번역하고 주석을 붙여 1899년, 1910년 1921년에 각각 출간한 「부처님의 대화록」(전3권)을 펴냈으며,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11판에 불교란을 대표 집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번역과 논문들이 있으며, 그의 말년에 집필하기 시작한 「팔리어-영어 사전」은 윌리엄 스테드(William Stede)의 편찬 작업이 더해져서, 1921년 출간을 시작으로 1925년에 모두 완간됐다. 뿐만아니라 그의 저서중 가장 유명한 「불교의 역사와 문헌(The History and Literature of Buddhism)」은 1896년 런던과 뉴욕에서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서구인들에게 읽히고 있는 베스트 셀러다.
초기영어원전학회 창립도
이들이 창립한 팔리성전협회는 ‘팔리 경전 연구를 촉진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시작돼 팔리 경전을 로마자로 출판하고 영어로 번역하며 사전, 용어 색인, 팔리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교본, 그리고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현재 옥스퍼드의 헤딩톤(Headington)에 자리하고 있다.
창설부터 1922년까지는 토마스 윌리엄 리즈 데이비즈가 회장으로 학회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의 사후에는 부인인 카롤린 어거스타 폴라이 리즈 데이비즈가 남편의 유훈을 받들어, 1942년 그녀가 죽을 때까지는 제2대 회장으로서 팔리성전협회를 굳건히 발전시켰다. 토마스와 카롤린 리즈 데이비즈 부부의 불교 연구에 관한 지대한 공헌은 오늘날 유럽 불교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이 불자 부부가 남긴 팔리성전협회는 오늘날 유럽불교에도 여전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동호〈정치학 박사·발틱연구소 소장〉
출처[법보신문]http://beopbo.com/news/view.html?section=1&page=4072&category=112&no=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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