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일선원/순일스님저서

삼매 - 제14장 텅빈삼매와 외연삼매의 차이점-1

순일자재 2013. 2. 28. 19:15

제14장 텅빈삼매와 외연삼매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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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삼매라는 것이 이치와 방법(무심상태에 드는 것에 무슨 이치와 방법이 있느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그 이치와 방법이 반야심경에도 있다)을 알고 그 상태에 들었다면 그 후 그러한 방법으로 자주 그러한 상태에 들 수가 있다.<텅빈삼매는 초기원음경전에는 공(空)삼매라 함. 순일스님께서는 삼매는 모두 공한 삼매가 되는데 전보다 더 깊은 삼매에 들었을 때 이전의 삼매가 완전한 공이 아니었음으로 알게 된다고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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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다가 어느 날 방법 없이 저절로 들어지기 시작한다. 허나 어떠한 방법으로 무심삼매에 들기는 들었는데 그 후 잘 아니 되기 십상이다. 이치가 확연하지 아니하고 체계적인 삼학<계정혜>을 밟지 아니하였거나 삼매에서 일심의 상태를 확고히 다지지 아니하고 무심상태에 들어 보았을 때는 종종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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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인 방법에 의하여 텅빈삼매에 자주 들다 보면 또는 속성이 아닌 많은 세월을 하여서 텅빈삼매에 든 경우, 텅빈삼매에서 생각으로 돌아와도 텅빈삼매는 아니지만 텅빈삼매 비슷한 상태가 어느 정도 유지된다. 즉 곧바로 생각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여진이 어느 정도 지속된다. 삼매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러한 여진이 더 많은 시간동안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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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할 때 걸어 보아야한다. 물론 텅빈삼매 비슷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주 천천이 천천이 걸어질 것이다. 왜 이때 걷는가 하면 걸으면서도 무심삼매 상태에 드는 것을 체득하기 위하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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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란

1. 앉아서 꼼짝 안하고 이완하여서 들게 되며

2.그 후에는 탈것(버스)등에 타서도 되며

3.움직이면서도 되며(운전하면서도 되며)

4.말하면서도 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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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이 여정이다. 말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텅빈삼매는 생각이 다 끊어진 상태라고 하였다. 헌데 다시 생각하면서 말하면서 텅빈삼매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허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텅빈삼매보다 더 나아간 외연삼매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찌 말하면서도 무심 상태일 수가 있는지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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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삼매가 깊어지면 외연삼매가 벌어진다. 둘 다 무심삼매이다. 허나 둘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텅빈삼매에서는 나도 사라지고 세상도 사라진다.<오선의 공무변처>말 그대로 공만 가이 없이 벌어지는 상태이다. 허나 이 '공'은 '공'의 모양이 아니다. 그저 텅빔만 가이 없이 벌어지기 때문에 '공'이라고 굳이 이름 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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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깊은 텅빈삼매에서 즉 나도 세상도 사라진 무아 무심상태에서 이제 눈을 세상을 향하여 든다. 그때 다시 세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세상은 전에 보던 그러한 세상이 아니다.
“맙소사! 이것이 세상이란 말인가? 이러하게 청정하고 이러하게 맑고 밝으며 깨끗하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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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생각을 그 상태에서는 할 수가 없다. 생각으로 돌아 나오기 시작할 때에 느껴지는 소감이다. 장장엄한 극락(極樂), 정토(淨土)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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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되 예전의 산과 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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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은 육안(肉眼)으로 보는 세상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된다. 텅빈삼매에 들면 “산도 공이요 물도 공이로다”가 된다. 사실은 산이니 물이니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공이다.
외연삼매에 들면 세상은 다시 드러나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된다. 허나 산이란 이름자도 물이란 이름자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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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색깔과 형태'로만이 청정하게 비추일 뿐이다.

이러한 상태는 육안으로 보는 즉 생각으로 보는 세상과는 다르다. 생각으로 볼 때에는 세상을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생각으로 꾸며서 보았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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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이 다 사라진 무심(외연삼매)의 상태에 비추어지는 세상은 모두 맑고 밝게 기이하게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이러한 외연삼매<육선 식무변처>가 깊어지면 '봄'이 벌어진다. 이것이 진정한 관(觀)이다.

 

 

Hi토씨와 띄어쓰기를 약간 수정함, <>안은 옮긴이의 해설임. 삼매(samadhi 사마디)는 언어와 영상(相, 산야)을 초월한 상태이다. 순일스님께서는 평생동안 한두번이라도 무심삼매에 드시는 분이 지구에 몇 안된다고 하심. 그런데 불법을 모르고 낮은 삼매(초선, 이선)에라도 들어 본 이는 자신이 궁극의 삼매(상수멸)에 들었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