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면 무심이라는
티끌하나 없는 전체의 거울에, 세상은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고 나아가서 '봄'만이 존재하게 된다. 텅빈삼매는 뒤에 더
깊어지는 고요, 지극한 평화, 온전한 각성상태, 청정심의 깊이에 의하여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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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삼매는
물아일체(物我一體)부터 우아일체(宇我一體)까지로 파악이 된다. 똑같은 외연삼매인데 어찌
물아일체부터 우아일체까지의 차등이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텅빈삼매가 깊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연삼매도 또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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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일체라고 하면 마치
'우주와 나'가 하나가 된 듯이 의미가 느껴진다. 허나 말을 차용하여 썼을
뿐 '나'가 '우주'와 하나 되는 방법은 없다. 무심삼매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것은 '나, 개아'가 얼마나 더 사라졌느냐와 비례한다.-즉 '개아'가 온전히
사라진 상태가 '우아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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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의 '참나'가
'전체자'였던 것이다. 만약 본디의 참나가 전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종교나 마음공부는 전부 허망한 것이 될 것이다. 본디의 나가 원래 그러하지 아니 하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전체가 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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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본디의 나가
그러하지 아니 하다면 그 무엇이란 얻어야할 무엇이 된다. 그럴 때 '얻어야 하는
자'와 '얻어야 할 무엇'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두개의 대립이며 둘
다는 부분자라는 것이 된다. 얻어야 할 무엇이 전체가 아닌 '부분'이라면 얻어 보아야 언젠가는 없어질 허망한 무엇이라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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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질 무엇을 얻으려고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체자(全體自) 또는
무한자(無限自)가 되려는 것이라면 본디 우리가 그것이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러하지 아니 하다면
애초에 그런 것이 성립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애초에 성립하지 아니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마음공부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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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인가 전체가
있을 거라는 추론으로 이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하다면 애초에 우리가
전체였을 때만이 스스로 전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늘
전체자였고 전체자인데 이러한 전체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가 무엇인가?
바로
'개아'이다. 요만한 몸과 요만한
생각(마음)이 '나'라고 믿는 자체가 늘 '체'임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몸이 '나'라고
믿는 자체가 바로 '나는 부분자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며 '나'를 만드니 또한
수많은 '너'들이라는 부분자들이 생기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물아일체는 '나가
사라진 만큼' 벌어진 참나 상태이며, 우아일체란 '나가 온전히 사라져'서 드러난 본디의 전체 상태이다. 텅빈삼매와 외연삼매는
쌍수(雙修)로 가게 된다. 텅빈삼매가 깊어질수록
외연삼매의 물아일체부터 우아일체까지의 깊이가 깊어진다. 또는 외연삼매만 놓고 다른
길로 이야기 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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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서
1. 사물하나에 온 우주가 있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2. 길가에 돌맹이 하나도 제자리에 완벽히 있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또는 꾸겨진 옷이 '있는 그대로' 완벽한 상태.
또는 눈이 오는 것이
아니고 바닥의 본래의 자기구멍으로 연결되어져 있는 상태
3. 세상의 움직임과 고요
중에서 '움직임'이 정지한 상태로 움직이는 '있는 그대로의'의 상태
4. 온 우주가 정지하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등등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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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삼매란 텅 비워진
본래마음이 드러나며 외연삼매란 맑고 밝으며,
각성이 드러난다고 이야기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둘은
쌍수(雙修)로 꼭지점까지 나아가게 된다. 둘이 쌍수로 잘 나아갈
때에 텅 비워지고 맑고 밝고 깨어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또는 텅 비워지고
명징(明澄)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으며 또는 텅 비워지고 밝고
뚜렷하다고 이야기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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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일체 상태도 지속이 아니 된다. 그러므로 늘 무심삼매인 본연삼매(本然三昧)상태로 가게 된다. 본연삼매 상태란 다른 말로 하면 늘 개아가 사라진 상태이다. 두 길은 다른 듯 하며 같은 말이다. 전자는 삼매를 더욱 더 들어서 가는 상태이며 후자는 개아를 더 소멸하여서 가려는 상태이다. 즉 삼매에 들 수 있을 때는 늘 삼매에 들어야 하며 생각으로 돌아오면 개아를 더 소멸하는 길로 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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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와 띄어쓰기를 약간 수정함. 본 순일스님 저서 [삼매]는 순일큰스님께서 초기원음경전(빠알리, 니까야)을 만나기 전에 쓰신 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 부처님께서는 초선부터 팔선인 비상비비상처와 상수멸까지 닦아 해탈하는 '양면해탈(심해탈과 혜해탈)'과 어느정도의 삼매와 반야를 닦아 탐진치를 소멸하여 해탈하는 '반야해탈(혜해탈)'의 두 길을 말씀하셨다. 위의 글은 삼매를 상수멸(본연삼매)인 궁극까지 닦아 양면해탈에 이르는 길에 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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