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삼매에 드는 것과 개아를 소멸하는 길>은 다르지 아니한 것이
개아가 더 소멸하면 할수록 더 깊은 무심삼매에 들며 그러다가 다시 생각으로 돌아오면 많은 개아가 소멸한 것을 알게 되며, 미세하게 남은 개아를
더 소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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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게 텅빈삼매와
외연삼매가 쌍수로서 꼭지점에 거의 다 달았을 때 여전히 온전히 청정한 본래의 마음이 아니 되게 하는, 미세한 개아 또는 미세한 상(想)이
남아있는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서 온전히 개아를
버리는 무아의 길이 아니고는 본래의 청정심이 될 방법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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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삼매에도 여전히 미세한
상(相)이 있으며, 여전히 안주하려는 상(相)이 있기 때문이다.
안주하려는 것은 머무르려는
것이다. 누가 머무르려 하는가? 바로 개아(個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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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慧>란 무엇인가? 혜란 깨어있음, 각성, 본성이다.
그러하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혜란 무심상태에서 드러나는 오로지 하나의 본래마음이며
지혜란 본래마음의 작용
또는 쓰임이다. 즉 지혜는 주관과 객관이
있어서 분별한다. 허나 시시비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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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생각(마음)에서
“개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개아가 있는 생각(마음)은
지식이요, 개아가 없는 생각(마음)은
지혜이다. 그러므로 이제 늘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디 혜였던
우리가 이러한 혜 자체가 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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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아로서는 무아(無我,
無個我)여야 한다. 즉 무아=혜,
무아=전체자, 절대유아 이다. 이러하게 무아이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몸과 생각이 “나”가
아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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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것의 겉모습에
마음이 머무르지 아니하여야 하며,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하여야 한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하게 마음이 안과
밖 어디에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일어나는 대로 쓰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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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 일 법칙을 앞에서 이야기 한 바 있다.
“에너지는 우주 내에서
스스로 생길수도 소멸할 수도 없다. 다만 형태만 변할 뿐이다.” 형태만 변한다는 말은 같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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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을 머무르게 할 방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머무를 수 없는 것을 잡거나 저항하여서 머무르려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어서 고통만 가져올 뿐이다. 번뇌란 바로 머무를 수
없는 것을 머무르려 하는데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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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 삼매에 계속
들려하는 것이 만약 아트만(atman)을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면 또는 개아의 의식을 확장하여서 전체가 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려운
길<불가>이라는 것이다. 즉 혜가 되기 위하여
무아라는 이치가 와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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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무아는 혜이기
때문이다. 전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테두리가 없이 무한이다. 개아가 의식을 확장하여서
그 끝없는 무한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한 일이 될 것이다. 개아가 개아를 놓는 순간에
무한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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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삼매와 외연삼매가
쌍수로써 깊어질 때에 가도 가도 늘 그러한
본연의 상태에 있을 수가 없다. 그때 즈음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무아”이다. 삼매를 추구하는 것이
미세하게 남은 개아이기 때문에 늘 본래의 상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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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늘 청정한
마음상태로 있으려면, 그 남은 개아를 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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