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일선원/순일스님저서

삼매 - 제7장 참회하고 나서의 꿈의 4가지 형태

순일자재 2013. 1. 31. 20:45

제7장 참회하고 나서의 꿈의 4가지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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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가장 근접하게 닿아있는 무의식의 맨 위층에는 많은 번뇌가 있다. 이러한 번뇌는 주로 무의식의 표현인 꿈에서 괴롭힌다. 이것이 심해져서 일상에서까지 괴로워진다면 정신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밤에 꿈에서 괴로움을 당하니까 낮에는 다 잊어먹어서 상관없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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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낮에 우리가 우울한 일이 벌어져서 번뇌가 생기면 그것으로 인하여 몸도 무기력 하여지고 눈꺼풀도 내려앉으며 온 하루가 무겁기 그지없다. 그러하듯이 밤에 꿈에서 한번만 그러한 번뇌가 와도, 아침에 일어나서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채로 찌뿌둥하고 무언가 상쾌하지 아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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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이야기 하는 바로는 하룻밤에 수없는 꿈을 꾼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아침에 바로 깨기 전에 벌어진 꿈만 기억한다고 한다. 기억을 하든 안하든 몸과 마음은 밤새 너무도 무거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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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가 하루 만에 두 배가 되면 아마도 우리는 살기가 싫을지도 모른다. 허나 수십 년에 걸쳐서 두 배가 되었다면 견딜 만 할 것이다. 번뇌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무거워졌기에 견딜 만 하다고 느낄 뿐, 그것이 없었던 아이 때의 가벼움을 우리는 잊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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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회개)를 통하여서 큰 번뇌만 사라져도 꿈은 개꿈이 아니고 스토리가 있게 된다. 우리가 흔히 개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토리가 없이 이것도 올라왔다가 저것도 올라왔다가 하는 경우이다. 이유가 번뇌가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두서없이 꿈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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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통하여 큰 번뇌가 사라진 이는 이제 꿈도 스토리가 있게 된다. 더러는 참회만을 통하여 꿈에서 깨어있게 된다. 이러하게 꿈에서 깨어있게 되면 대체로 네 가지의 형태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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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식으로 시작하여서 무의식에 닿아서 참회를 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의식은 잘못했다고 여기지 아니 하는 잘못들, 즉 무의식은 알고 있는 작은 참회거리들이 꿈속에서 계속 나타난다. 그리고는 에고를 더 소멸하라는 그러한 꿈이 저절로 몇 년간 벌어지며 결국 저절로 에고를 소멸하는 여정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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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큰 에고들이 소멸하여지면 아주 작은 “이럴까 저럴까”하고 망설이는 모습도 꿈에 나타난다. 큰 번뇌들 사라지면 종래엔 그러한 것들마저도 번뇌롭다. 마치 눈에 대들보가 있을 때 그것이 고통이었다가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그보다 더 작은 것이 고통이 되고 그것마저 사라지면 나중에 작은 먼지도 눈에 고통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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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아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한 '이럴까 저럴까'하고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번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종래에 이해하게 되며 결국은 '개아의 소멸' 즉 '무아'<비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길로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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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의 것이 다 끝나야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에고가 소멸하면 바로 지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종교에 따라서 달리 벌어지는데, 기독교라면 하나님 또는 예수가 나타나시거나 또는 말씀만으로 현상과 실상에 대한 모든 지혜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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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라면 붓다가, 무교라면 본성이 모든 것을 드러내주며 채널러라면 채널러 식으로 모든 지혜를 드러내준다. 더러 꿈에서 깨달음에 대한 답안들을 본 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꿈에서 깨어나서 세상에 가지고 나간다면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좋아한다. 허나 꿈에서 깨어나면 도저히 생각으로 떠올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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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있는 상태가 딱히 본성의 상태는 아니다. 본성<반야, 깨어있음>과 무의식과 의식이 혼재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지혜라는 것도 최종의 지혜는 물론 아니다. 헌데 의식(꿈에서 깨어서 생시로 돌아오면)으로 돌아오면 왜 기억이 되지 않느냐 하면 의식은 무의식에 비하면 하찮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학생의 의식으로 대학생문제를 풀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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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온밤 내내 푹 자면서도 깨어있을 정도 되면 요번엔 필히 깨어날 때에 세상에 갖고 나가겠다고 하면서 열심히 똑같은 것을 돌리고 돌린다. 그러고는 이정도면 이제 잠에서 깨어나도 안 놓칠 자신이 있다고 여기고는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의식은 다시 그것을 놓쳐버린다. 그러나 이쯤 되면 이제 그것을 놓치건 아니건 걱정을 하지 아니 하여도 된다. 스스로 알음에 의해서가 아닌 체화(体化)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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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와 동시에 일념(一念)상태가 벌어진다. 온밤 내내 꿈이 일정한 모습으로만 있으면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즉 온밤 내내 호흡만 있다든지, 강만 있다든지, 꽃물에 묻혀있다든지 하는 상태인데 상당히 지복스러운 상태이며 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른 것이 변화 없이 온밤 내내 하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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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분명히 꿈과 같이 보여 지는 혹은 되어있는 상황이 있으니 깊은 잠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도 지나면 각성상태가 벌어진다. 허나 이것은 꿈이 아니며 깊은잠에서 깨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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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예지가 있다. 허나 예지가 큰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순일큰스님께서는 예지가 삿된 길로 이끌 수 있다 하시며 경계하심> 생략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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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와 띄어쓰기를 약간 수정. <>안은 옮긴이의 설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