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순서는 늘 '나---------->너' 로부터 시작하여야 효용성이 있다.
예로서
유능한 심리치료사라면 아마도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주~욱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는
“희생으로 살아 오셨군요.”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
그러면
대부분의 피상담자는 '아! 이제야 내가 희생으로 살아온 것을 알아주는 이가 있구나'하고 마음에 위안을 상당히 받을 것이다. 어쩌면 눈물도
흘리면서 많은 것이 녹아내릴 것이다. 우리 누구나 희생으로 살아온 것이 맞기 때문이다. 헌데
육십억 인류 누구나 피해자가 맞긴 한데, 누가 가해자란 말인가?
-
바로
우리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아니겠는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누군가
피해자라는 것이 먼저 설정이 되면 이제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좀체 인정하기가 쉽지 아니하다. 허나
스스로 가해자였던 것을 돌아보고 참회한다면 스스로 피해자였던 분노들이 쉬이 녹기 시작한다.
-
그러므로
순서는 가해자였던 것을 먼저 참회하게 되며 그리고는 피해자였던 분노들이 녹기 시작한다. 나아가서 “나와 나”사이의 괴리감, 자괴감이
녹아내린다. 참회를
할 때에 중요한 것은 뭉뚱그려서 하지 아니 하는 것이다. 아니
하는 것 보다는 뭉뚱그려서 참회해도 좋을 일이지만은, 무의식에는 하나하나 개별사건으로 저장되어 있으므로, 개별로 하였을 때 진정으로 삭제가 되는
것이다. -
-
저장이 되는 시스템이 있다면 삭제의 시스템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 와 B 가 서로 싸웠다고 하여보자. 둘은 친한 친구 사이다.
'A -------> B' 에게 잘못한 것은 A에게 죄의식으로 저장되었고
'B
-------> A' 에게 잘못한 것은 A에게 분노로 저장되었다. B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것이
흔히 벌어지는 쌍방의 경우이다.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우기는 경우이기도 하다. 또는
의식은 나도 잘못이 조금 있지만 상대가 더 잘못했기 때문에 나는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경우이기도 하다.
-
대부분
의식은 이러하게 교묘하게 잘못을 은폐하며 인정하지 아니하려는 경향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을 에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은
친한 친구이기에 몇 날 몇 일을 서로 끙끙 고민하면서 번뇌한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A 가 B를 찾아가서는 끝내
“내가
잘못했다”하고 사과하게 된다. 그때
B도 “나 역시 이러 이러한 것은 잘못 했어”라고 한다.
-
즉,
A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저장된 죄의식은 삭제된다. 이러할
때 B의 분노 역시 눈 녹듯이 녹게 된다. 또한
B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A에게 저장된 분노도 사라진다. 이러할
때 B의 죄의식도 사라진다.
-
즉,
저장된 죄의식을 삭제 하는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잘못을 한 경우에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고 인정하였다면 즉 의식이 무의식에 저항하지 아니하고 계합 하였다면 죄의식은 저장되지
아니한다. 그
자리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한 것만 죄의식으로 저장되어서 번뇌가 된 것이다.
-
지금
그것을 인정하면 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으므로 진정으로 인정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眞)참회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선한
이는 번뇌가 삿된 이보다 덜 쌓이는 이유가, 잘못을 하면 그 잘못을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의식은 무의식에 계합(契合)하여야 하며 종래에는 무의식은 본성에 계합하여야 한다<종래에 무의식은 소멸하여야 한다>. 즉 의식은 무의식의 개인적 양심에 계합하여야 하며 무의식은 그 개인적 양심이 선악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고 선악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보편적 양심 혹은 순수의식 또는 “조건 없는 선”인 본성에 계합을 하여야 한다.
-
더러
어떤 분들은 선한 일을 함으로써 죄의식을 지우려고 하다. 즉,
선업으로 악업을 상쇠 시켜보려 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선업으로 악업을 상쇠 시킬 수 없다고 한다. 무의식은
단순하다. 의식처럼 교묘하게 무엇과 무엇을 바꾸지 아니한다. 그러기에
악업은 단순히 악업으로 저장하며 선업은 곧이 곧 대로 선업으로 저장을 한다.
-
그리하여 악업에 대해서는 인과응보를 받게 하며 선업에 대하여서는 보상을 받게 한다. 이것이 작은 이치이다. 허나 이것 또한 작게 보면 맞기는 하지만 여전히 짧은 견해이다. 크게 볼 때에 악업은 선업으로 상쇄가 된다. 누군가 착한 일을 자꾸 하다 보면 종국에는 잘못 살아왔던 것을 전부 참회하게 되는 것이 이치일 것이다. 결국 악업은 “참회”를 해야 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성립한다.
-
(다음에
계속)
*토씨와 띄어쓰기를 약간 수정하였고 <>안은 옮긴이의 설명임.
초기원음경전에서는 개아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인즉은 개아에게 '자아, 불성, 반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 개아의 모든 것, 또는 형성된 모든 것(세계와 오온/색수상행식=몸과 마음=무명<avijja>=苦)이 소멸하여야 전체로 편재한 이름할 수 없는 '불성, 반야, 명지<avijja>'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무의식은 본성에 계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갈애의 조건인 무의식(행[의도]과 식[무의식, 아뢰야식])이 소멸하여야 한다. 그 이치와 방편은 사성제와 팔정도, 계정혜의 길이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순일스님 법문을 참고할 것. [순일선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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