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란 생각의 한 종류이다. 우리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걱정스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즉 걱정이 담겨 있지 않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점은 내면의 평화이다. 내면의 세계가 평화를 이루면 그보다 완전한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각기 독특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략 내면의 완전함을 이루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고, 그 누구와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고, 삶이 기적처럼 느껴지며, 생활이 즐겁게 여겨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게 된다. 이 세상을 더욱 나은 세계로 만들 수 있다면 바로 이 내면의 평화에 의해서일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너무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라 현실과 거리가 먼 듯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본래 내면의 평화는 우리 인간의 것이었다. 다만 그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을 뿐이다. 중략 내면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생각할 때에 내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사랑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어린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가르치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랑은 우리가 완전한 내면의 평화를 이루도록 만들어 주는 정답이다. 우리가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어린이가 이 땅 위에서 행복하게 살게끔 인도해 주는 것도 사랑이다.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인생을 사랑하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생활을 불평하지 말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리스트텔레스는 “행복은 인생의 의미이며 목적이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사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행복이란 외부적 환경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 즉 마음에 달린 것이다.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면의 평화를 얻는 방법, 다시 말해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결과는 있을 수 없다. 결과를 근심하다가 아무런 행동도 못한다면 완전히 무의미한 생활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어린이는 근심하며 세상을 살아서는 안 된다. 행동하는 인간으로 키워져야 한다. 언제나 성공하고, 승리하고, 완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바보같이 행동하고, 때로는 갓난아기처럼 어리광을 부릴 필요가 있다. 웃고 바보처럼 행동하는 중에 스트레스는 없어져 버리고 건강한 심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걱정은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이끌려 하기 때문에 생기므로 좀더 여유 있고 좀더 허술한 삶을 생각해 보자. 이상하게도 완벽해지려고 노력할 때 결과는 그렇지 못하게 되고, 조금 모자란 듯 생활할 때 결과는 완벽해진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까지 해내려고 하지 않고, 어린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요구하지 않는다면 스트레스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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